브랜드 유니버스

유니버스가 필요한 이유③ (마지막) - 우리는 그렇게 세상을 인식한다.

유니버스설계자 2023. 2. 27. 17:30

우리는 앞에서 '유니버스', 또는 '세계관'이라는 말이 많이 쓰이게 된 것은 우리가 그렇게 변했고, 기술이 그것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라고 살펴보았다.

유니버스가 필요한 이유① - 사람들이 생각하는 방식이 변하고 있다. 
유니버스가 필요한 이유② - 기술은 '유니버스'를 필요로 한다. 
유니버스가 필요한 이유③ - 우리는 그렇게 세상을 인식한다. (이 글)

 

그렇다면 사람들의 커뮤니케이션 스타일 변화와 기술의 변화가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

오래 전 부산국제영화제에 출품사 직원의 자격으로 참석한 적이 있었다. 영화제에 참석하면 다양한 장소에서 행사가 있어 해운대를 비롯한 부산 곳곳을 다녀야 했다. 이 때 했던 일 중 하나가 감독님 의전이었다. 연로하신 분이었기 때문에 감독님을 모시고 여러 행사장으로 안내하는 것이 나의 일 중 하나였다. 당시 감독님의 숙소는 해운대 서쪽 끝의 호텔이었고, 나의 숙소는 동쪽 끝에 있었다. 감독님을 모셔야 하는 시간이 되면 나는 숙소에서 나와 택시를 타고 감독님의 호텔로 이동했다. 그런데 하루 이틀 지나고 안 사실인데 해운대의 서쪽과 동쪽은 끝은 걸어서 약 20분 거리였다. 해변을 따라 걷기에 딱 좋은 거리와 시간이었다. 나중에 거리를 재어 보니 도보로 2km가 채 되지 않는 거리였다집 근처였다면 매일 걸어 다녔을 정도의 거리였다. 그런데 나는 왜 이틀이 지나도록 해운대 일대가 차로 이동해야 할 정도로 멀다고 느꼈을까?

 

낯섦, 두렵거나 설레거나.

처음 가보는 여행지에서는 색다른 기분을 느낄 수 있다. 특히 이질적인 요소가 훨씬 많은 해외 여행이라면 더욱 그렇다. 길거리에는 피부색이 다른 사람들이 알아듣지 못할 말을 하고, 무슨 뜻인지도 모를 표지판과 간판이 즐비하다. 우리나라에서 타던 버스, 지하철이지만 그저 다르게 느껴진다. 골목길에는 우리 일상에서 보던 편의점, 술집, 벽돌 담장이 있지만 어딘가 생소하다. 묘한 기분이 든다. 마치 두뇌 속에 박하사탕을 꽂아 넣은 듯, 머리 속에는 신비롭고 유쾌한 자극이 가득 찬다. 집근처였다면 그냥 지나칠 만한 평범한 휴지통, 정류장 표시, 길거리의 쓰레기까지도 눈에 들어온다. 여행지의 작은 디테일 하나 하나가 새롭다.

 

이런 경험은 머리 속을 상쾌하게 만들어 준다. 기분 좋은 긴장이다. 어째서 이런 일이 벌어질까? 낯선 곳에 가면 우리는 본능적으로 환경을 탐색하게 된다. 일종의 생존 본능이다. 그래서 우리의 두뇌는 더 민감해진다. 낯선 상황에 부닥치면 우리 두뇌는 더 활성화한다.  평소에는 입력된 데이터들 간의 회로가 안정적이지만 낯선 환경에 가면 활성화되어 새로운 정보를 탐색하고 받아들이는 데에 유리하게 변한다. 만약 억지로 끌려온 공간이라면 이러한 활성화 상태가 불안한 마음처럼 느껴지겠지만, 여행을 왔다는 긍정적인 해석이 이러한 불안정함을 설렘이라는 감정으로 해석하게 된다.

이러한 설렘도 시간이 지나면 안정적으로로 변해간다. 많은 사람들이 이런 경험을 해보았을 것이다. 처음 가본 길을 오고 갈 때, 갈 때보다 돌아올 때 더 가깝게 느끼는 경험. 우리는 어떤 공간에 대해 머리 속에 인지하게 되면 그 때부터거리에 대한 감을 갖게 된다. 하지만 미지의 공간에 들어서면 한 걸음 한 걸음이 탐험이다. 처음에는 멀게 느꼈던 숙소와 숙소 근처의 음식점이, 며칠 지나면 머리 속에 지도가 그려지면서 부담 없는 거리가 된다. 이것은 공간 뿐만이 아니다. 새로운 사람을 만날 때도 이러한 과정이 이루어진다. 사람을 만나 서로를 탐색하고 기존 경험에 비추어 유형화하고 나와 비슷한 점을 발견해 공감한다. 사람이라는 세계가 조우하는 것이다.

 

익숙해진다는 것은 머리 속에 '세계'가 들어서는 것.

이렇게 공간의 구조를 인지하거나 상대방의 유형을 파악하고 서로의 공통점을 공유하면 이제 익숙함의 단계에 들어선다. 이 때부터는 공간이나 사람에 대한 판단이 생긴다. 이러한 판단을 하고 나서야 우리는 그 곳을 또는 그 사람을경험했다고 말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공간이나 사람에 대한 태도가 형성된다. 좋은 곳인지, 불쾌한 곳인지, 좋은 사람인지, 나쁜 사람인지.

이러한 경험들이 쌓여 머리속에는 공간 또는 사람에 대한 정보가 종합되고 회로가 만들어진다. 그 사람의 성향, 살아온 삶, 좋아하는 것, 싫어하는 것, 걸음걸이, 나와의 추억 등이 모여 그 사람에 대한 회로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공간도 마찬가지다. 이렇게 한 대상에 대한 크고 작은세계가 우리 머리 속에 만들어진다.

 

세상의 변화는 점점 우리에게 더 자연스러운 방향으로 가고 있다.

이것이 바로 앞서 이야기한 비선형성, 음성언어, 아날로그와 디지털 세계의 통합 등의 변화가 받아들여지는 이유다. 비선형적인 방식은 세계를 발견하고 익혀감에 있어 훨씬 자연스러운 방식이다. 음성언어는 문자언어보다 훨씬 직관적이고 효율적이다. 따라서 작금의 변화 양상이 이러한 것은 그것이 우리의 본능에 훨씬 자연스럽기 때문이다. 기술이 따라주지 못해 우리는 덜 자연스러운 방법을 오랫동안 즐겨왔을 뿐이었다. 우리가 세계를 인식하고 경험하는 방식은 디지털 세계에서도 똑같이 적용될 수 있고, 두 세계의 통합은 우리에게 보다 많은 가능성을 제시한다.

 

반응형